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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 도덕적 우월감[프로젝트] 단상 모음/2020 칼럼, 단상 2020. 6. 8. 14:08
#8일차
[마음 읽기] 다른 생명을 먹는 일 / 장강명 소설가 / 중앙 / 2020.05.13
"동물과 사람의 적당한 관계는 뭘까? 고등동물과 ‘하등한 동물’ 사이에 선을 그어야 할까? 동물들은 ‘해방’되어야 할 존재일까? 아니면 이는 실은 모두 우리 마음의 위안에 관한 문제일까?"
"첫째, 어떤 일이 도덕적으로 옳은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때 그 일을 한다는 이유로 도덕적 우월감을 느껴서는 안 된다."
"둘째, 나의 불쾌함·불편함, 혹은 금욕에 대한 은밀한 열망을 섣불리 도덕과 연결시켜서도 안 된다. ‘많은 사람이 불편해한다면 잘못된 일’이라는 주장은 인터넷 시대의 질병이다. 성 소수자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나."
"우리는 모호한 정서적 반응이 아니라 단단한 이성과 논리를 기반으로 새로운 윤리를 쌓아야 한다. 건강한 논쟁을 통해 그 답을 찾는 것이 우리 시대의 윤리적 과업이라 생각한다. 동물권 이슈뿐 아니다."
장강명 소설가
육식을 떠올릴 때 '윤리'를 붙인다면 "온갖 역설과 비일관성"이 뒤따른다. 필자가 육식을 하지 않을 논리적 근거를 댈 자신이 없다면서도 미로처럼 논거들을 헤맨 이유는 어느새 확장된 윤리적 시선을 담기 위해서일까. '개'고기만을 말할 수 없고, '두족류'도 고려해야하며, 배고픔의 고통을 지고 있는 이들을 기만하지 않을 의무도 져야한다. 윤리가 "모호한 정서적 반응"만으로 쌓일 순 없는 노릇이다.
결국 육식이냐 채식이냐 어디 한 곳으로 저울질 하지 못하고 '태도'에 집중하게 된다.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지 않는 것. 불쾌감과 불편함 같은 감정을 도덕과 연관짓지 말 것. 감정이 아닌 탄탄한 이성과 논리로 새로운 윤리를 쌓아갈 것.
공감을 연대의 기반으로 삼는다면 논리적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던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육식이든 채식이든 감정이 도덕의 지반이 되기엔 취약할 뿐이다. 육식 논쟁으로 논제를 시작했지만 '윤리적 과업'을 질문한 칼럼의 마지막 여운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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