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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지 않아서[프로젝트] 단상 모음/2020 철학, 단상 2020. 4. 29. 09:11
#9일차
<거북과 독수리>
거북 한 마리가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어휴, 힘들어. 잠깐 쉬어 가야겠어.” 그때 하늘을 나는 새 한 마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새는 저렇게 하늘을 마음껏 날고, 가고 싶은 곳도 빨리 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거북은 새가 부러웠습니다. ‘나는 뭐야? 너무 느려서 세상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나도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없을까. 아니, 단 한 번만이라도 날아 보고 싶어.’
거북은 결심을 했습니다. ‘이렇게 시간만 보낼 수는 없어. 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야. 그 방법을 배워 보자.’ 거북은 독수리라면 나는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탁이 있어서 왔어. 나도 하늘을 날아 보고 싶어. 내게 나는 방법을 가르쳐 줘.” 독수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뭐, 하늘을 날겠다고?” 독수리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너는 날개가 없어 하늘을 날 수가 없어.”
“제발 부탁이야. 내가 하늘을 날 수 없다면 네가 등에 태워서라도 날게 해 줘. 하늘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 내 소원이야. 내가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렴.” “정 그렇다면 좋아. 대신 잘못되어도 내 탓은 하지 마.” “알았어.” 난생처음 독수리에게 매달려 하늘을 날게 된 거북은 기분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거북은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소리 질렀습니다. “거북아, 가만히 있어. 네가 자꾸 움직이면 날 수가 없어!” 그러나 거북은 독수리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계속 마구 움직이며 소리쳤습니다.
거북은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동물들 가운데 자기가 처음으로 날았다는 생각에 휘파람까지 불며 몸을 마구 흔들었습니다. 그러는 바람에 독수리는 점점 힘이 들었습니다. 날기도 쉽지 않은 데다가, 거북이 마구 움직이자 화가 치밀었습니다. ‘구경시켜 주면 조용히 볼 것이지, 날지도 못하게 몸을 흔들어 대면 어떡해? 에잇, 맛 좀 봐라!’ 화가 난 독수리는 거북을 놓아 버렸습니다. “으아악!” 거북은 비명을 지르며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솝우화> 중에서
너 답지 않아. 나 다운 게 뭔데? 진부한 드라마 대사가 떠올랐다.
"거북은 결심했습니다" 뒤는 거북의 피땀눈물이어야 할텐데 그렇지 않았다. 독수리는 거북의 소원은 들어주지만 끝까지 비행을 돕진 않는다. 거북은 꿈을 이루고 나서 마냥 겸손하지 않았고 독수리는 그저 아량만 베풀지 않는다.
서사만 본다면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가 편하지 않았던 건 '답지 않아서'다. 정확히는 내가 아는 너 답지 않아서 그렇다. 거북 답지 않아서, 독수리 답지 않아서. 이야기는 놀랍도록 반전인 것만 같고 불편하다.
이솝우화 목적이 질문을 던지는 거라면, 이미 나눠진 유형화 자체가 지금도 유효한가 의문이 든다. 우린 상황에 따라 다양한 동기를 얻고 변화하는 유기적인 존재니까.
하늘을 오른 거북은 꿈을 이뤘기에 가만히 있어야만 했을까. 독수리는 규칙을 무너뜨린 거북을 인내로 지켜만 보고 있어야만 할까. 거북과 독수리의 양가 감정을 모두 이해해버릴만큼 지금의 우린 성숙해져버렸다. 답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 살고 있기에 거북과 독수리 이야기는 특별한 듯 평범한 듯 내게 다가온다.
거북스럽지 않아서, 독수리스럽지 않아서. 그런걸 꼬집은 거라면 우화는 여전히 우리에게 다른 의미의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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