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쎔블리(assembly)
#11일째
[책과 미래] 사회운동의 민주화 /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 매경 / 2020.06.13 "그러나 현대의 사회운동들은 머리 없이 스스로 조직하고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생각 아래 자기 머리를 스스로 베어냈다. 이제 운동 방향이나 형태를 결정할 때 `고독`은 필요 없다. 우리는 홀로 결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흩어져 있지만 늘 연결돼 있다. 필요하면 `함께` 결정할 수 있고, 공감하면 언제든 모인다(assembly). 스스로 우리 행동을 정할 뿐 아무도 권위를 갖고 우리를 지도하게 놔두지 않는다." "네그리와 하트는 오늘날의 대중을 다중(多衆)이라고 부른다. 다중은 하나의 정체성에 포획되지 않는 `독자성을 지닌 자율적 개인의 집합`으로 전혀 일사불란하지 않다. 각자 다른 꿈을 꾸고, 각자 다른 만큼 협력하고, 각자 다른 해결책을 품는다. 자기 욕망을 간직한 채 사안에 따라 협력과 불화를 이어간다. 다중의 시대는 사회운동에서 지도자의 역할을 바꾼다." |
가까이 미국의 상황과 조금 멀리 2016년 광장의 문화, 모두 새로운 사회문화의 발화를 알린다. 어쎔블리(assembly), 함께의 의미는 한명의 리더 아래 '동원'되는 모두를 의미하지 않는다. 각자의 의미와 결정 아래 의견이 맞으면 '함께'를 결정하고 아니면 흩어진다. 귀납적으로 의미를 다듬어보면 목적이 보이지만 거꾸로 보면 목적성이 없어보인다. 사람 아래 사람이 없는 '아래로부터의 협치'는 '위'를 불가항적인 권력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저 한 사람 한 사람이 목적이고, 감시자며, 주체자다.
그럼에도 '아래로부터의 협치'가 다소 이상적으로 느껴진다면 '지도자'의 존재 때문이 아닐까. 지도자가 없다고 하지만 대표성을 띈 누군가는 어디나 있기 마련이다. 칼럼에서 지적한 대로라면 지도자는 존재한다. 다만 역할이 바뀌었을 뿐이다. 효과적으로 '함께'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적절한 전술을 제시하는 전문가의 역할.
전문가인 지도자가 전술 제시 이상으로 존재를 드러내려할 때, 의견이 맞지 않은 자들은 대열을 쉽게 이탈해버린다. 지도자는 더이상 지도자로 선택받지 못한다. 어느 제도보다 단단하고 치열한 민주화의 작동방식이다.
다만 아직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면 '커뮤니티'에 기반한 개인의 위치다. 개인의 자유로 모였지만 '커뮤니티'에서 발화된 개인은 과연 여전히 '자유로운'개인의 신분이 맞을까. 칼럼을 읽으면서도 풀리지 않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