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스승
#25일차
정말로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은 달린 자국을 남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언제나 사람을 잘 도와 주고, 그러므로 선한 사람은 선하지 못한 사람의 스승이요, |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단계를 넘어 도와 하나된 경지에 이르면 ‘나’라고 하는 것은 없어지고 ‘도’만 있는 상태이므로 결국 내가 하는 모든 것은 도가 하는 일이 되고,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서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흔적이나 흠은 사라져 버린다는 뜻이 아닐까? 성인은 이렇게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행동만을 하기 때문에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좋은 물건 나쁜 물건으로 사람이나 사물을 차별하지 않는다. (p.133) -보통인의 차별주의적 단계를 넘어 모든 사람, 모든 사물을 한결같이 대하는 성인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습명(襲明)’이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여기서는 ‘밝음을 터득함’이라 해 보았다. ‘습명’이란 사람이나 사물을 구할 것, 버릴 것으로 이분하는 대립적 의식 구조에서 탈피하여 이 둘을 불가분, 불가결의 하나로 보는 총체적 안목의 획득을 아울러 뜻한다고 풀이할 수도 있다. (p.134) |
글에 나오는 '성인'은 너무 무결해서 멀게만 느껴진다. 읽는 내내 '성인'이라는 단어가 돋보였던 건 타인으로 읽어냈기 때문이리라. 감히 내가 되겠단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단편적으로 떼어 놓고 보면 어딘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복합적으로 보면 존재 가능성에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다.
너무 당연해서 무용한 듯 보여도 현실에서 사람들은 줄곧 '성인'을 찾았다. 대통령에서 왕을 찾고 선생님에게 스승을 찾았다. 그들에게 실무 이상의 도덕을 기대하며, 놀랍게도 무결한 '성인'이 아닌 모습에 실망하기도 한다. 예외적으로 특정인만 짊어져야 하는 도덕적 책무란 없기에, 그럼에도 내려놓지 못하는 기대치에 대해 생각한다. 판타지와 같은 '성인'이 현실에서 어떤 영향력을 가질까. 외려 판단력을 흐리게 하진 않을까.
내가 될 수 없다면 남들에게 너무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대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오늘은, 어김없이 돌아오는 스승의 날이다.